
칡덩굴에서 시작한 웅장한 사찰 구인사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커다란전체는 작은 시작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상시유적은 3개을 바위그늘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징역은 상시 3그늘유적이다

길위에서 만난 숲 영천리 측백수림 단양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을 달리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정표 하나가 있다. 영천리 측백수림. 야트막한 산을 뒤덮은 울창한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알수있는 유물 각기리입석 입석은 다른말로 선돌이라고 부르는데,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일

충북 기념물 제102호 금굴구석기유적 길이 80m, 너비 6m, 높이 9m의 굴이다. 구석기시대 전·중·후기,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들이 덧

이곳의 복도소는 퇴계가 단양군수 재임 시 관계를 목적으로 만든 보로써 물이 맑고 깨끗하며 경승지 뿐만아니라 목욕을 하면 몸과 마음 까지 깨끗해질 만큼 훌륭하여 퇴

우화교기사비는 조선 영조 29년(1753) 단양군수였던 이기중선생이 단양천에 우화교라는 돌다리를 놓고 기념하기 위하여 다리 옆에 세운 비이다. 그 후, 큰 홍수로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하고 있던 퇴계 이황선생이 정시에 시달린 심신을 피로르 풀고자 매일 이곳에 와서 손발 씻으면 마음까지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탁오대

나지막한 뒷산에 몸을 기댄 채 몸을 웅크린 조자형 가옥은 오늘도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오가는 이 누구라도 집안을 둘러보고가라는 듯. 조자형 가옥은 40평의 목

큰 산하나 등지고 앞으로는 너른 논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영춘향교는 마치 벼슬에서 내려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를 닮은 고즈넉함이 있는 곳이다. 조선

다닥다닥 이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담한 마을 풍광이보이는 곳에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한 단양향교가 보인다.

1978년의 새해가 밝은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어느겨울날, 단양에서 학술조사를 벌이던 조사팀은흙 묻은 신발을 털려고 돌부리를 찾다가 우연히 땅속깊숙이 묻힌 보물